6卷3冊,續集3卷2冊(合5冊) : 遺墨, 四周雙邊 半郭 18.7 x 15.2 cm, 有界, 10行20字 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 31.4 x 20.7 cm.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남몽뢰의 시문집이다. 봉화의이계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통사랑 해준(海準), 어머니는 안동 권씨로 군자감직장 지(誌)의 딸이다. 어려서 문장을 조달하 여 문명이 있었다. 1642(인조 20)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1(효종 2)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세자시강원설서에 기용되고, 이어서 연원도(連原道) 찰방을거쳐 예조정랑이 되었다.
1655년김성일의 시호(諡號)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뒤에 고성과 임실의 군수를 역임하면 서 고을 수령으로 저질러서는 안 될 일들을 모아 「거관불망기(居官不忘記)」를 지어 자신과 후임관리들을 훈계하였다. 백성의 부세를 견감하고 농사를 권장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1666(현종 7)년 진주목사가 되었으나 예제(禮制)의 개혁을 상언했다가 왕의 노여움을 당해 파직되었다. 그 뒤 이계정사(伊溪精舍)를 지어서 후진을 교육하였다. 특히, 사학(史學)에 밝아 국조이후 당시까지 역사적인 사실을 「동국통감부(東國通鑑賦)」와 「동국소승(東國小乘)」을지어서 밝히고, 「기해예송전말(己亥禮訟顚末)」을 지어 숙종 초에 있었던 예론시비의 근원을 밝혔다. 죽은 뒤 9년 만에 예제가 자기의 주장대로 고쳐지자 손자 윤주(胤冑)가 상언하여복관되었다. 후일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안동의 병산서원에제향 되었다.
이 문집은 1778(정조2)년 증손 성천(聖天)과 현손 상의(象毅) 등이 간행하였는데, 책머리에 이상정의 서문이 있다. 권1․2에 부(賦) 2편, 시 173수, 권3에 소(疏) 2편, 서(書) 3편, 잡저 2편, 권4에 잡저 4편, 서(序) 5편, 권5에 기(記) 8편, 발(跋) 8편, 명(銘) 2편, 전(箋) 1편, 상량문 4편, 권6에 제문 8편, 묘표 2편, 묘갈지(墓碣識) 6편, 행장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판본은 뒤에 1937년 의성의 이계당(伊溪堂)에서 간행한 것이다. 문집 중 「동국통감 부(東國通鑑賦)」는 단군조선 이래 우리나라의 역사를 핵심 줄기만 간추려부(賦)로 읊은 것인 데,깊은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독특한 작품이다. 시는 시체별로 분류되지 않고, 저작 시기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잡저의 「동국소승(東國小乘)」도 주목할 만한 글이다.그 서두 부분에 서 “우리나라는 처음에 군장(君長)이 없었는데 당요(唐堯) 25년무진(戊辰)에 신인이 태백산 신단목 아래로 내려오자 나라사람들이 그를 세워 임금으로 삼았다. 이가 곧 단군(檀君)이며 국호를 조선이라고 하였다. 단군은 처음 평양에 도읍을 정하였고, 후에 백악(白岳)으로옮겼 다가 은나라의 무정(武丁) 8년 을미에 아사달로 들어가나라를 다스렸다.”라고 되어 있다. 이 글 역시 저작자의역사인식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저작자가 임실군수로있을 때 쓴 「거관불망기(居官不忘記)」는 수령으로서 잊어서는안 될 치민(治民)과 치리(治吏)의 요령을 32조목으로 설명한 것이다.